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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경험하기의 목표
기꺼이 경험하기의 목표는 유연성이다. 판단하지 않고 경험 (생각,느낌,감정,신체 감각 등) 을 쫓아내지 않으면서 지금 여기에 온전히 현존할 수 있을 때,당신은 행동에 필요한 단계를 취할 수 있 는 자유를 더 많이 갖게 된다. 만일 감정,느낌,생각,기억 등을 통제하려고 하는 대신에 이를 기꺼이 경험하려 한다면,통제 의 례는 그 토대가 흔들리고 당신은 이러한 의례의 불가피한 부산물 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러한 부산물은 상당히 예측 가능하다. 첫째,당신은 자신의 내면과의 전쟁에서 패배한다. 당신이 이러 한 내면의 내용을 지니길 거부하면,이를 지니게 된다. 둘째, 당신은 자신의 행동을 유연하고 효율적 인 방식으로 통제하는 능력 을 잃게 된다.
기꺼이 경험하기는 무엇이 아닌가
기꺼이 경험하기는 쉽지 않다. 노력이 많이 들기 때문은 아니다. 기꺼이 경험하기는 ‘노력이 든다’는점에서가 아니라 ‘다루기 까다롭다’는 점에서 어렵다. 그것은 인간은 배울 수 있지만 마음 은 배울 수 없는 행동이기에 다루기가 쉽지 않다. 마음은 기꺼이 경험하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기꺼이 경험하기는 비판단적 이고 현재에 존재하는 것인 반면,마음이 작동하는 방식 은 시간적 관계와 평가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기꺼이 경험하기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그것이 무엇이 아닌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 도 움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 아닌지를 알면,마음이 당신에게 “기꺼이 경험하기는 이런 것이다.”라고 실제와 다르게 말할 때 그 말을 에누리해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기꺼이 경험하기는 시도하기가 아니다
내담자들에게 기꺼이 하겠는지를 질문하면,흔히 나오는 대답 은 '시도해 보겠다(I will try).’ 는 것이다. 이는 분명 어중간한 자발 성의 표시다. 영어의 ‘try(시도하다/ 라는 단어는 본래 ‘가려내다 또는 골라 내다’를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한다. 법적인 시도(legal trial)를 ‘trial(재판y 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 에 있다. ‘try(시도하다)’ 와 ‘trial(재판)’ 은 어원이 같다. ‘시도하기(trying)’ 가 지니는 문제점 은 시도를 통해 가려낸다는 것이 조건적인 판단과 평가의 문제라 는 것이다. 그러나 기꺼이 한다는 것은 조건적인 판단 및 평가와 는 정반대다. 기꺼이 한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 속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것이다. ‘시도하기’는 ‘저울질하기’ 혹은 ‘그런지 아닌 지 알아보기’ 의 성질을 지닌다. 이는 수동성과 판단의 의미를 짙 게 포함하는 것이다.
‘try(노력하다)’ 에 함축된 다른 의미로 ‘큰 노력을 들이다’ 가 있 다. 이러한 정의 또한 기꺼이 경험하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왜 냐하면 기꺼 이 경험하기는,적절히 이해하면,노력과는 전혀 관련 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큰 바위를 움직여 보려고 노력할 수 있 지만,그 결과를 보장할 수는 없다. 기꺼이 경험하기는 그렇지 않 다. 기꺼이 경험하기는 지금 여기서의 당신의 실제 경험에 대해 그저 예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그것은 노력의 문제이거나,노력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시험해 보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예 혹은 아니요다.
만일 기꺼이 경험하기를 감정에 적용한다면, 이는 당신이 느끼지 않은 것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이미 느끼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만일 어떤 노력이 들어간다면,이는 기꺼이 경험하기가 아니다. 이를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하여,잠시 오른손을 왼팔에 대 보라. 어떻게 느껴지는지 알아차리라. 이번에는 오른손을 왼팔에 댄 다음,절대로 아무것도 느끼지 말라. 이 두 가지 선택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노력을 요구했는가? 이미 느끼는 것을 느끼기 위하여 ‘노력’ 해야 했는가? 아니면 그저 자 동적으로 느껴졌는가?
출처: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 Steven C. Ha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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