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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경험하기는 믿음의 문제가 아니다
내담자들에게 기꺼이 하겠는지 질문했을 때,가끔씩 듣는 대답 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는 것이다. 당신은 이미 탈융합에 대해 이해했으므로,어떤 덫이 놓여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기꺼이 경험하기는 믿음의 문제가 아니다. 이를 좀 더 설명해 보자. 오른손으로 왼팔을 만지는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다음 말을 큰 소리로 반복해 보라. “나는 왼팔을 만질 수 없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이 문장을 반복하여 말해 보라. 이제 여전히 할 수 없다 고 외치면서, 오른손을 들어 왼팔에 대고는 어떻게 느껴지는지 느껴 보라.
짐작건대,당신이 말하는 것과 관계없이 당신은 왼팔의 느낌을 느꼈을 것이다. 당신이 이미 느끼는 것을 느끼는 것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그것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도 좋고,할 수 있다고 생각해도 좋다. 어떤 순간에도 질문은 똑같다. “당신이 느낌을 느낄 때 그 느낌을 기꺼이 느끼겠는가?” 이는 예 혹은 아니요 둘 중 하나를 요구하는 질문이다. 오직 두 가지 방식으로만 답 할 수 있다. 예 혹은 아니요.
기꺼이 경험하기는 당신이 하고 싶어 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할 수 있기를 바라는 어떤 것도 아니다. 나중에 한번 시도해 볼 어 떤 것도 아니다. 기꺼이 경험하기는 그 순간에 예 혹은 아니요로 대답하는 것이다.
기꺼이 경험하기는 자기기만이어서는 안 된다
내담자들은 때로 기꺼이 경험하기의 물음에 대하여 속으로는 그렇지 않으면서,겉으로는 자신마저 기만하며 예라고 대답한다. 이들이 속으로는 내키지 않는다는 확실한 징표가 있다. 예라고 말 한후에 ‘만일’이라는조건을다는데,‘만일’ 뒤에 오는조건이 임 의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닌 경우다. 그러한 자기기만의 노력은 실패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은 제멋대로 성질을 부리는 아이의 경우와 같다. 당신 집에는 숙제를 다 마칠 때까지는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없다는 규칙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아이는 울고불고 소리를 지르며 당신에게 나쁜 엄마 혹은 나쁜 아빠라고 한다. 이제 당신이 혼자서 속 으로 ‘이 녀석이 심한 욕만 하지 않는다면,아무리 떼를 써도 들어 주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한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의 마음이 펼 쳐놓은 책과 같아서, 당신이 속으로 하는 생각을 아이가 다 들을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어떻게 될 것 같은가? 당신은 아이에게서 심한 욕을 듣게 될 것이다. 이제 혼자서 속으로 ‘떼쓰는 것이 5분 이상 지속되지만 않는다면,아무리 떼를 써도 들어주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한다고 가정해 보자. 아이가 당신의 마음을 읽을 수 있 다면,어떻게 될 것 같은가? 아이는 5분 이상 떼를 쓰고 말 것이다.
당신의 마음에는 회피와 기만을 위한 공간이 많기 때문에,생 각,감정,감각 등과 거 래를 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 이는 떼 쓰기 상황과 똑같다. 불안을 기꺼이 경험하되 이처럼 안전하지 않 은 상황에서는 예외로 한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은 ‘예’ 라고 대답 하지 않고 ‘만일 〜라면,예’라고 대답하는데,그 '만일’은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당신의 대답이 “만일 불안이 1W점 척도상에서 60점을 넘지만 않는다면,불안을 기꺼이 경험하겠다.”라는 것이라고 가정해 보자. 당신의 불안은 어떻게 되겠 는가? 60점을 넘기고야 말 것이다!
출처: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 Steven C. Ha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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