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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시적인 관계

다음 질문을 생각해 보자. ‘여기’ 는 어디인가? 아주 어린 아동은 이 질문에 대해 어려워한다. ‘여기’ 란 어떤 주소나 방과 같은 구체적인 장소가 아니다. 오히려 관찰이 이루어지는 지점이다. 다른 어떤 장소는 다 ‘거기’다. 또한 다음 질문을 생각해 보자. ‘지금’ 은 언제인가? 아주 어린 아동은 이 질문에 대해 역시 어려워한다. ‘지금’ 이란 월요일이나 오후 6시와 같은 구체적인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관찰이 이루어지는 시점이다. 다른 어떤 시간은 다 ‘그때'다.

마찬가지로 다음 질문을 생각해 보자. ‘나’는 어디 있는가? 아주 어린 아동은 이 마지막 질문에 대해 역시 어려워한다. ‘나’ 또한 지금 관찰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점이다. 다른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관찰은 ‘나’ 가 아닌 ‘너’ 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적 관계는 지시적인 관계다.

지시적 관계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직접적인 증명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그것은 관찰자의 시각에 관한 것이다. 의식적인 관찰이 이루어지는 지점에 대한 감각은 생소하게 느껴지는 감각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도 그 경계를 잘 알 수 없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결코 그 경계를 의식적으로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언어적인 앎이 그것을 아는 자로서의 당신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당신의 어린 시절 기억으로 되돌아가 보자. 어떤 한 가지 기억을 회상해 보라. 즐거운 기억이어도 좋고, 고통스러운 기억이어도 좋다. 잠시 동안 그 기억을 떠올려 보라. 당시에 당신의 눈 뒤에서 세상을 바라보던 그 감각과 연결될 수 있는지 살펴보라. 이제 다음 질문에 답하면서, 이를 경험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지 살펴보라. “그 사건들이 전개될 때 그것들을 바라본 사람은 누구인가?” 이제 또 다른 질문에 대답해 보라. 오늘 아침, 당신의 아침식사를 한 사람은 누구인가? 아침식사 장면을 그려 보고,다시 한 번 당신의 눈 뒤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감각에 연결될 수 있는지 살펴보라.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은 오늘 아침식사를 할 때에도 거기 있었으며 당신이 어린아이였을 때도 거기 있었음을 주목하라. 당신의 생각이나 감정, 역할, 신체는 수없이 변화해 왔지만, 당신은 당신의 인생 내내 당신이었다.


모든 것이자 아무것도 아닌 것

당신이 어린 시절 의식적인 인간 존재가 된 이후로 당신은 늘 당신이었으며,유아기의 기억상실증은 사라지고 동시에 이러한 지시적 관계의 틀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나’가 바로 관찰하는 자기다. 이 감각은 당신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다니므로, 문자적으로가 아니라 경험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감각이다. 당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그 경험에 대한 언어적 지식의 일부가 되는 것은 바로 이 ‘나’다. ‘관점으로서의 당신’ 이 없이는 당신이 아는 어떤 것도 경험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나’ 는 경계가 없다. 왜 그런가? 이러한 인식의 소재에 대한 감각이 없다면, 의식의 일관성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것을 바라보는 심리적 관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기에 대한 감각이 경험적으로 경계가 없는 것이라면, 이는 또한 하나의 사물로서 경험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독특하다.

우리가 기술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사건들은 하나의 사물로서, 즉 경계를 지닌 하나의 사건으로서 경험된다. 그러나 여기에, 바로 언어적인 지식 자체의 한복판에 '비물질적인’ 자기가 있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에 대한 감각이 경계를 지닌다고 믿을 수는 있지만, 그 경계를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는 없다. 여기 언어적인 지식 자체의 바로 한가운데에 구분이 없는 하나의 사건이 있다. 구분이 없는 사건은 아무런 사물도 포함하지 않으며,또한 ‘모든 사물’ 을 포함한다. 그래서 동양 철학에서는 이러한 자기에 대한 감각을 일컬어 ‘모든 것이자 아무것도 아닌 것’ 이라고 부르며, “당신이 어디로 가든지 거기에 당신이 있다.”와 같은 말로 이를 표현하기도 한다. 당신은 앞 장에서 탈융합 연습을 하면서,당신의 관찰하는 자기와 접촉하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생각에 빨려들지 않고서 생각이 마음의 시냇물을 따라 흘러내려가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생각하는 것을 관찰하는 관찰자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답할 때,이러한 자기에 대한 감각을 하나의 사물인 것처럼 생각하려 애쓰지 말라. 그것은 사물이 아니다. 당신은 가령 고요한 초월의 상태나 평화로움의 느낌을 통하여 이러한 자기에 대한 감각을 간접적으로 알게 된다. 어떤 사람에게 이 러한 자기 감각은 두려움을 자아낼 수 있는데,왜냐하면 자신이 마치허무 속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다. 당신이 더 가까이 접촉하길 바라는 것이 바로 이 관찰하는 자기다. 왜냐하면 그것은 수용하고, 융합에서 벗어나며, 현 순간에 존재하고,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지점이기 때문이다.그것은 불변의 사물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물이 아니기 때문에, 불변하며 견고하다.





출처: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 Steven C. Ha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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