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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인 자각과정으로서의 자기
지속적인 자각(ongoing self-awareness)이란 자신의 경험을 현재 순간에 유동적이고 지속적으로 아는 것이다. 이는 자신에 대해 언어적 범주를 적용한다는 점에서 개념화된 자기와 유사하다. 그러 나 요약적이고 평가적인 범주 대신에 다음과 같이 기술적이고 비평가적 이며 현재적이고 유연한범주를 적용한다는 점에서 볼 때, 이는 개념화된 자기와 다르다.
‘나는 지금 이것을 느끼고 있다.’
‘나는 지금 저것을 생각하고 있다.’
‘나는 지금 이것을 기억하고있다.’
‘나는 지금 저것을 보고 있다.’
이러한 자기 인식이 건강한 심리적 기능에 중요하다는 많은 증거가 있다. 그 대표적인 예는 자신의 정서적인 경험을 파악하지 못하는 '감정표현 불능증(alexithymia)’ 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임상적인 결핍은 다양한 심리적 문제들과 상관을 보인다. 또한 놀랄 필요도 없이, 이는 경험의 회피와 매우 높은 상관을 보인다. 자신의 현재 경험을 관찰하거나 기술하지 못하는 사람은 지금 순간 진행되는 것에 눈과 귀가 먼 사람이다.
우리는 자신의 개인사와 현재의 행동 성향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을 파악해서 이에 기초하여 말하도록 배워 왔다. 예를 들어, 우리는 아이에게 “뭘 좀 먹을래?”라고 물을 목적으로 “지금 배고프니 ?”라고 묻는다. 아주 어린 아동은 때로 이 질문에 정확하게 답하기 어려울 수 있다. 왜냐하면 이들의 자기 인식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고, 자신의 감정 이나 느낌 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배고프지 않다 고 말하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먹을 것을 달라고 할 것이다. 또는 실제로는 배가 고프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배가 고프다고 말하면서 음식을 집어들 것이다.
현재 순간 및 경험과의 접촉은 융합과 회피가 침식될 때 더 가능해진다. 만성적으로 감정을 회피하는 사람은 자신이 느끼는 것을 잘 알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알지 못하는 것 자체가 회피의 한가지 강력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또한 개념화된 자기에 대한 집착이 지배적일 때, 지속적인 자각 과정으로서의 이러한 유동적인 자기 인식은 줄어든다. 지배적인 이야기와 일치하지 않는 반응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개념화된 자기에게 상당한 위협이 된다. 예를 들어, ‘항상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은 분노, 질투, 원망의 감정이 현재 순간에 나타날 때 이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때 탈융합과 수용은 지속적인 자각 과정으로서의 자기 발달을 자연스럽게 촉진할 것이다.
관찰하는 자기
관찰하는 자기 (observing self)는 자기의 가장 중요한 즉면이며 아주 오랫동안 자신과 함께 존재해 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언어적으로 가장 낯선 자기 인식으로 보인다. 이에는 다양한 이름들이 있다. 맥락으로서의 자기(self as context), 초월적인 자기(transcendental self), 영적인 자기(spiritual self), 비물질적인 자기(nothing self), 관찰하는 자기 등의 이름은 몇 가지 예에 불과할 것이다. 개념화된 자기나 지속적인 자각과정으로서의 자기와 달리, 관찰하는 자기는 언어적인 관계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 대해 덜 ‘알고’ 있는 것이다. 관찰하는 자기는 내용에 기초한 자기 인식이 아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기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CT의 이론에 따르면, 관찰하는 자기는 언어를 사용하는 결과로 나타나며 심리적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 당신이 아주 어릴 때, 즉 여전히 언어를 배우고 있을때, 당신은 어떤 일관적인 관점에서 사건을 기술하는 것을 배웠다. 당신이 무엇을 먹거나 보거나 행했는지를 기술할 때, 당신은 그 일관적인 관점에서 보고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출처: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 Steven C. Ha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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