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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라는 기차
불행하게도 이러한 과정들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은 ‘마음속에서 사는’ 경향이 있다. 즉, 이러한 언어적 과정에 기초하여 세상과 관계한다. 마음속에서 사는 것은 기차를 타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기차는 선로가 있어서 그 선로를 따라 운행한다. 그 선로의 방향이 당신이 가고 싶은 방향과 일치한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만일 선로의 방향과 달리 당신이 가고 싶은 방향으로 여행하려 한다면, 당신은 이 책 읽기를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원하는 삶이 ‘선로를 벗어난’ 것이라면, 당신에게는 오직 한 가지 선택만이 존재한다. 당신은 최소한 가끔씩이라도 기차에서 내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마음이라는 기차에 타는 것은 자동적인 과정이 되어 버렸다. 당신은 자신의 마음이 선사하는 생각을 믿는다. 당신은 달리는 기차에 타는 것을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에 중분히 배웠다. 당신은 언어를 배웠고, 말하고 추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웠다.일단 이를 배움으로써, 당신의 삶에서 마음이라는 기차는 영원한 존재가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생각을 멈출 방법이 없다. 언어가 그렇게도 많은 영역에서 유용한 이상, 마음이라는 기차는 계속해서 달릴 것이다. 그러나 기차가 쉬지 않고 달린다고 해서 당신이 그 기차를 꼭 타고 있어야만 할 이유는 없다.
실제 기차의 경우, 규칙에 따르기만 하면 승차가 허용된다. 당신은 기차 여행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한다. 승차권 제시를 요청하면 제시하고, 지정된 좌석에 앉고, 내려야 할 정류장을 놓쳤을 때 야단법석을 떨지 않는 등의 규칙에 협조하기만 하면 된다.마음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규칙과 조건은 간단하지만 매우 강력하다. 바로 믿거나 믿지 않거나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마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은 마음에 동의하든지 반론을 제기하든지 둘 중 하나의 방식으로만 마음에 반응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두 반응은 모두 생각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기초한 반응이다. 우리는 생각을 단지 사물을 관련짓는 지속적인 과정으로 보기보다는, 생각이 지칭하는 것에 기초하여 생각에 반응한다. 생각은 ‘사실적으로’ 맞든지 틀리든지 둘 중 하나라는 것이다.
생각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때, 당신은 ‘마음이라는 기차에 타고’ 있는 것이다. 즉, 마음이 당신에게 제시하는 생각에 반응하는 것이다. 그 생각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모두 그 규칙 내에 있는 것이므로, 둘 중 어떤 반응을 한다 해도 당신은 기차에서 내리지 못한다. 하지만 그 규칙을 어긴다면 기차에서 내릴 수 있다. 이 기차는 당신이 이따금씩 내리고 싶어 하는 기차가 아닌가? 경험이란 것이 진정으로 어떤 것인지 알고자 한다면,단지 그에 대해 생각만 하기보다는 스스로 그것을 경험해 보아야 한다. 마음이라는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면, 이를 실제로 해 보아야 한다. 당신은 마음이 설정한 규칙과 조건의 일부를 어김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이 기차에서 뛰어내릴 수 있을까?바로 이것이 이 책에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일단 당신이 기차에서 내려 땅에 발을 디디면,당신은 자신이 가고 싶은 방향을 선택하기에 더 좋은 위치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기차를 타고 언어적 조건화의 선로를 달리기보다는, 기차에서 내릴 때 가치에 따른 선택이 더 수월함을 알게 될 것이다. 이를 배우는 데는 얼마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지향해 나아갈 방향이다.
출처: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 Steven C. Ha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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